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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스타일, 망가짐과 자신감의 역설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3-08-12 조회수 1811

강남스타일, 망가짐과 자신감의 역설

 

박만규(아주대 불문과 교수)

 

싸이의 강남스타일뮤직비디오가 드디어 유튜브(Youtube) 동영상 조회 수 2억 건을 돌파하고 어디까지 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는 기존의 그 어느 K-pop도 해내지 못한 일이다. 무엇이 이러한 결과를 만들어낸 것일까? 중독성 있는 멜로디와 따라해 보고픈 충동을 일으키는 군무, 그리고 코믹하고 다이나믹한 뮤직비디오 편집 등이 원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런데 이 노래에서 강남스타일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일반적으로 말하는 강남스타일은 경제적 부를 바탕으로 한 고급스럽고 세련된 스타일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하나의 커다란 역설과 마주하게 된다. 왜냐하면 이 노래와 관련된 모든 면에서 이 같은 해석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우선 스스로가 밝힌 바대로 외모가 전혀 강남스타일로 보이지 않는 가수가 자신이 강남스타일이라고 여자에게 말하고 있다. 춤도 우아하고 세련된 것과는 거리가 멀다. 사실 그가 추는 말춤은 상류층의 전유물인 승마를 즐기는 것을 형상화하고 있다. 그러나 승마라는 고급 스포츠를 승마장이 아닌 마구간에서 한다. 회전목마 앞에서도 한다. 63빌딩 아래서는 폼만 잡고 실제 춤 출 때는 쓰레기 날리는 곳에서 한다. 정돈 안 된 한강 둔치, 관광버스 안, 지하철 열차나 통로 안, 지하주차장, 엘리베이터, 체육관 등, 뮤직비디오의 배경이 되는 모든 장소들이 강남스타일과는 거리가 먼 서민들의 장소이다. 또한 리조트가 아니라 놀이터 모래밭에서 일광욕을 즐기고, 해변이 아닌 목욕탕 욕조에서 물안경 끼고 잠수하고, 고급 사우나가 아니라 찜질방에서 찜질을 한다. 그리고 등장인물들이 입고 있는 의상도 그러하다. 거기에 명품으로 보이는 것들은 없다. 유재석이 입고 있는 전신을 감싸는 샛노란 옷처럼 모두 촌스럽다.

 

그렇다면 왜 이 노래는 강남스타일이 아닌 것들로 강남스타일을 지칭하는 것일까?

 

우선 가능한 해석은 이 노래가 강남스타일이 아니면서 강남스타일을 추구하는 사람들과 그러한 사고방식을 풍자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키치(kitsch)와 스노비즘에 대한 비판이다. 한 발 더 나아가 원래 우리가 생각하는 강남스타일이란 없다는, 다시 말해 강남스타일이라는 것 자체가 본래 키치이고 속물주의적인 것이라는 주장을 담고 있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커피 식기도 전에 원샷 때리는 사나이라는 가사처럼 사실은 허세만 가득하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가능한 해석은 반대로 강남스타일에 대한 자신만의 새로운 규정이다. 그러니까 비록 부가 뒷받침 되지 않아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고급스럽고 세련된 것을 갖고 있지도 추구하지도 못하지만, 현재의 형편에서 최고의 것을 즐기는 것이 바로 강남스타일이라는 사유이다. ‘촌스러우면 뭐 어때, 꼭 승마장에서만 말 타라는 법 있어?’ ‘나는 B급이다. 하지만 나는 최고이고 최고를 추구한다.’라는 자신감의 표현이다. 그러니까 강남스타일은 나만의 풍류이다. 이 같은 자신감 넘치는 개념 규정은 뛰는 놈 그 위에 나는 놈, 나는 뭘 좀 아는 놈이라는 가사에서 잘 드러난다. B급이 추구하는 강남스타일은 우스꽝스럽다. 그러나 그것이 주는 웃음은 놀림을 유발하지 않는다. 반대로 어떤 종류의 통쾌함을 선사한다. 그것의 원천은 무엇일까? 그것은 자신감이다. ‘그래 난 그런 놈이야. 나는 B급이다.’를 외치는, 감추지 않는 자기 노출, 그렇다고 너무 나대서 불쾌감을 주는 선까지는 가지 않고 귀여움에서 멈추는 중용을 보인다. 이 같은 자기 노출은 권위와 탈권위의 이중성으로도 드러난다. 자신을 가리키면서 1인칭 대명사 가 아닌 오빠라고 하고 있다. 권위적 언어 사용이다. 한 발 더 나아가 화자는 마초적 기질의 소유자이다. 뮤직비디오를 보면 화자는 여성의 엉덩이를 탐하는 속물근성을 가지고 있는 마초이다. 그러나 그는 군림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노홍철 아래서, 여자 아래서 말이 되어 주며 함께 즐긴다. 나아가 마초의 권위는 조폭들에게 기를 펴지 못하는 장면에서 여지없이 무너진다. 이처럼 권위가 허세에 불과함을 화자는 그대로 노출하고 있다. 요컨대 군림하지 않고 약점을 그대로 노출하는 탈권위의 코드를 읽을 수 있다. 아닌 게 아니라, 스포츠카를 몰고 떠나는 유재석의 모습에서도 부자들이 주는 반감을 느낄 수 없다. 목에 힘주며 가난한 사람들에 위압적인 태도를 취하는 부자가 아니다.’

 

키치의 풍자인지 자신감의 표현인지 해석은 열려 있다. 두 해석은 구조적으로 동일하므로 그 차이는 다만 작품을 보는 시각의 부정성과 긍정성의 차이일 뿐이다. 한국어를 모르는 외국인들도 가사는 모르지만 제목으로 인해 작품이 어떤 스타일에 관해 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그들도 두 해석 중 하나를 선택할 것이다. 그런데 안무와 카메라의 시선은 어딘가 긍정적 접근 쪽으로 더 기울게 한다. 세계적 경제불황으로 자신감 회복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고 불황의 원인을 기득권 계층의 탐욕에서 찾는 사람들이 많은 지금, 탈권위를 실행하는 가수에 세계인들이 열광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 아닐까?

 

(아주대학교 총동문회보 68, 2012.9.26.)

http://ajoua.or.kr/webzine/culture/19_03.ph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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