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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자를 그리며,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3-08-12 조회수 1610

어린 왕자를 그리며,

불어불문학과

강충권 교수

셍텍쥐페리가 남긴 어린 왕자는 이미 프랑스에서 발간된지 66년이 된 어른을 위한 동화이다 (미국에서는 2년 전에 출판되었다). 물론 초등학생들도 나름 이해할 수 있는 책이다. 교양과목이나 기초과목을 맡았을 때 학생들에게 읽고 발표하도록 하는 도서 목록에 나는 이 책을 거의 항상 포함시켜왔다. 많은 학생들이 어떤 형태로든 예전에 읽어 봤음 직한, 이미 고희를 바라보는 나이의 이 책을 왜 나는 꾸준히 학생들에게 권하는 걸까? 그것은 원서든 번역서든 읽기에 그리 어렵지 않으면서 오늘날의 세계, 특히 한국에 사는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한 메시지를 보내기 때문이다. 법정 스님이 생전에 이 책을 스무 번도 더 읽었고 하나의 경전으로 생각하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언급했을 정도로 이 책은 국가와 종교를 넘어 현대문명을 비판하고 우리가 회복해야 할 가치를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어린 왕자의 질문과 의도를 이해하지 못하며 기계문명과 물신주의에 함몰되어 숫자를 모든 것의 척도로 삼아 직관력과 상상력을 상실한 어른들은 한국에서 물신주의에 점점 지배당하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빨리 빨리를 외치며 고도경제성장만을 제일의 가치로 달려온 한국은 절대빈곤층은 줄였지만 어느 덧 많은 사람들을 물질주의의 포로로 만든 것은 아닐까? 모든 것을 내실보다는 외형으로 평가하면서 정작 중요한 가치들을 상실하는 우를 범한 것은 아닐까? 그 평가 순위에 많은 대학들이 일희일비하는 대학평가, 교수평가도 결국 숫자로써 평가가 이루어진다. 처음에는 대학에서 듣기에 생경하기만 했던 무슨 무슨 사업의 이름으로 진행된 연구 지원책이 대학 간의 빈익빈 부익부를 초래하며 진정한 업적보다는 외형상의 업적주의 혹은 전시행정을 야기한 역기능은 없는지 곰곰이 살펴볼 일이다.

나는 강의시간에 가끔 객담을 한다. 옛날 삐삐가 유행할 시절에는 삐삐 호출이 없으면 불안하다고 연신 삐삐에 매달려 있는 학생에게는 나는 호출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고 농담을 건넨 적도 있었다. 근자에 신문, TV에서 호들갑스러울 정도로 명품 열풍을 다루기에 어린 왕자에서의 중요한 것은(본질적인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구절을 인용하며 강의시간에 얘기한 적이 있다. 데카르트를 패러디하면 나는 명품을 걸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가 되는데 그런 사람이 되고 싶으냐고 했더니 모든 학생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최근에 교환학생으로 1년간 파리에 갔다 온 학생에게 파리에서나 프랑스 다른 지방을 여행할 때 소위 명품을 걸치고 다니는 사람이 많더냐 물었더니 못 보았다는 대답이었다. 나는 여러분 자신이 명품이 되도록 하고 나와 함께 요새 판친다는 명품 퇴출 운동을 하면 어떻겠냐고 하니 모두들 웃었다. 물론 어쩌다 마음에 드는 귀여운 명품을 살 계제가 되면 살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것저것 명품을 걸쳐야 인정받고 대우받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니 그건 상품가격과 사람의 가치가 전도되어 사람이 물질의 노예가 되는 정말 창피한 사회이다.

어린 왕자가 전하는 사랑, 우정, 연대감도 이기적 물신주의의 팽배에 눌린 결과 오늘날 한국 사회 대학사회를 포함해서 에서 이익관계, 효용성이 점차 인간관계를 지배하여 종종 사람간의 최소한의 존중, 예의, 신의가 실종되게 하는 것은 아닌지 질문도 던져본다. 나는 평소 학생들에게 재학 중에 고향 이외의 지역을 많이 여행 다니고 가능하면 저축을 하여 졸업 전에 해외 배낭여행이라도 꼭 해보기를 권장한다. 우리 남한 땅이라야 대략 한 변이 300km인 정사각형보다 약간 큰 정도일 뿐이라는 걸 강조하고 비행기 타고 한반도 상공을 떠날 즈음에 꼭 한번 우리 땅을 내려다보길 권한다. 셍텍쥐페리가 비행사로서 우주적 시선으로 지구인의 연대관계를 설파했다면 나는 우선 학생들에게 우리가 얼마나 작은 땅에서 살고 있는지, 소위 정치계가 그로 인해 종종 비난받는 지역주의란 얼마나 어이없는 망국병인지를 말하고 장차 사해동포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라도 우선 우리가 작은 땅에서 오손도손 잘 살 수 있도록 의식의 혁명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곤 한다. 타인, 타향, 타국을 많이 볼수록 나 자신과 내 고향과 내 나라를 더 잘 알 수 있으며 좀 더 넓은 시야를 갖춤으로써 생각과 행동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타자에 대한 존중과 이해와 배려의 기본적인 연대의식이 바탕을 이루고 있을 때 치열한 학문적 혹은 정치적 토론도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지 않을까?

그 어느 때보다도 어린 왕자가 보고 싶은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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